어느 3년차 개발자의 회고록

 

얼마 전 친한 동료 분이 블로그에서 저의 회고 글을 봤다고 말씀해주신 게 계기가 되어 오랜만에 회고를 작성해 봅니다. 그러다 보니 제목이 필요해서 자연스럽게 “3년차 개발자의 회고록” 이라고 써버렸는데, 언제 3년차가 되어 버린 건가 싶어요. 어쨌든 스스로 부담 주지 않고 가볍게 저에 대해서, 그리고 앞으로 어떻게 하고싶은지에 대해서 써보려고 합니다.

 

반성의 시간

나의 자만에 대하여

사족이지만 올해 연초에 토정비결을 봤었는데 첫 문장이 “분수에 맞게 살라” 였어요. 지금껏 제 실력보다 운이 좋아서 많은 일들이 잘 풀려왔는데, 그로 인해 제가 대단한 개발자인양 착각하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일을 할 때 저의 말투나 질문 습관, 그 안에 숨어있는 생각들이 점점 자만으로 물들어가는 걸 느끼던 차였어요. 그만하라고 말해줄 무언가가 언젠가는 필요했을 거라고 생각하니, 올해 운세에서 본 말이 도리어 행운입니다.

 

저는 단점보다 장점을 더 많이 생각하려고 하는 경향이 있어서 가끔 이렇게 단점을 써놓고 직시해야 밸런스가 맞춰저요. 스스로에게 너무 관대합니다. 신입 때 들었던 “신입임에도 리더십이 있다”는 칭찬은 저의 책임감을 키웠지만, 실력이 부족함에도 리더가 되고 싶은 그래서 실력이 뛰어난 사람에게 하게 되는 못난 질투심도 함께 키운 것 같아요.

 

이런 생각을 적기 부끄럽고 누군가 안 좋게 볼 까봐 걱정도 되지만 고치고 싶어 적어봅니다.

 

말그릇

저는 질문할 때 안 좋은 습관이 있어요. 진심으로 궁금해서 보다는 상대방에게 조언하기 위해서, 나올 법한 답을 이야기 흐름에 이용하기 위해서 질문들을 합니다. 이런 습관이 생기니 저도 저와 대화하기 싫더라구요. 그래서 괜히 주변 사람들과 거리를 두기도 했습니다. 누군가와 얘기를 나누고 싶다가도 상처를 줄까봐 말하기를 주저하는 사람이 되었어요.

 

어떤 의도를 가지고 말을 하면 대화가 힘들어지는 것 같아요. “선의 최대의 적은 선의이다.” 라는 말이 있듯 도움을 주려 하지 말고 그냥 대화를 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다보면 그 말이 누군가를 살릴 수도 있을까 하고 생각하면서요.

 

혼자서 개발할 수 없는 개발자 렛시

앞선 내용 들에서는 개발자로서가 아닌 인간으로서 저에 대한 회고를 써보았다면, 이번에는 개발자 렛시의 단점을 써보려 합니다. 아직도 신입 개발자처럼 팀원들의 리뷰에 의존하고 있습니다. 이제 어느 정도 완전한 코드를 작성하고 내 생각에 대한 설득력까지 갖추어야 하는 단계라고 생각하는데, 쉽지 않네요.

 

코드를 작성할 때는 물론이고, 논의 중에 입장이 명확히 정리가 되지 않아요. 실력은 대부분 경험에 따른 직관 이라는 말을 어디선가 본 적이 있는데 아직 경험이 부족해서 일까요? 의견을 주장하면서도 제가 저를 설득하기 위해 말이 길어짐을 느낍니다. 최고의 설득은 확신 인 것처럼, 스스로 확신을 가지고 주장을 할 줄 아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더해서 스스로 해결하기 어려워 보이는 문제를 만나면 잘하는 동료분들께 곧바로 의지해버리는 것도 더 깊게 공부할 수 있는 기회를 막아버리는 듯 합니다.

 

자잘한 단점들도 많지만 정말로 고치고 싶은 3가지만 적어봅니다.

 

다독임의 시간

나보다는 우리가 중요한

혼자서만 알고 있는 것들을 떠안게 되는 상황을 몇 번 겪어보니 “본인만 아는 일이 없게 하자”는 목표가 생겼어요. 다른 사람과 알고 있는 지식수준을 맞춘다는게 당시에는 시간이 더 소모되는 것처럼 보이겠지만 결국엔 미래의 내가 휴가를 갈 수 있게, 아플 때 쉴수 있게 돕는 길인 것 같아요. 그래서 업무를 마치고 몰랐던 점이 있으면 문서화하거나 회의에서 공유하는 걸 놓치지 않으려고 해요.

 

급해보이는 일이 있으면 동료를 도와주고 문제를 함께 보는 습관은 오늘의집에서 만든 것 같아요. 처음 입사하고 아무것도 모를 때 올린 질문 스레드에 댓글이 80여개가 달리는 순간부터 감사함과 동시에 소속감이 들었고 저도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개발자가 되었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필요로 할 때 도움을 줄 수 있게 빠르게 일을 처리하고 여유로운 시간들을 남겨두려고 해요.

 

가슴이 시키는 일을 하는 나

작년 앱 개발에 도전해봤을 때를 떠올려보면, 한동안 비슷한 일들을 하면서 지루해하고 있었던 것 같아요. 새로운 걸 해보고 싶다고 리더분께 여러 차례 찡찡댄 후에 저에게 기회가 왔습니다 ㅋㅋㅋ 저는 “어려울까?” 라는 생각을 하기 전에 “재밌을까?” 라는 질문이 먼저인 사람이라는 걸 이번 일로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고생하고서도 또 비슷한 기회가 찾아오면 별 고민없이 “할래요!” 라고 대답할 것 같거든요.

 

빠른 적응력

그간 다른 팀에 잠시 파견을 가거나, 다른 지역에서 일을 하거나, 새로운 분야를 개발하는 등 환경이 바뀐 적이 종종 있었습니다. 이런 상황들을 겪으면서 저는 바뀐 환경에 꽤 빠르게 적응하는 사람이라는 걸 알게 되었어요. 애초에 지루한 걸 잘 못 견뎌서, 다양한 것들을 시도하는 것에 익숙합니다. 새로운 분야에 도착해서 내가 진짜 아무것도 모른다는 걸(내가 누구나 인정하는 초보란 것을) 인정하고 나면 편하게 모른다고 하고 질문할 수 있어서 오히려 마음이 편해요. 이런 성격이 절 더 도전적으로 만드는 것 같습니다.

 

개발자라는 직업을 가진 사람으로서 “새로운 일을 즐기면서 빠르게 적응해나가는” 라는 특징을 가진 건 자랑할 만한 일인 것 같아요.

 

 

어떤 개발자가 되고 싶은지

장단점을 나열해봤는데 사실 단점 중에는 그다지 고치고 싶지 않은 것도 있고, 꼭 고치고 싶은 것도 있습니다. 장점 중에서도 크게 장점이라고 생각되지 않는 것도 있고 계속 가지고 가야겠다고 생각되는 것도 있어요. 필요한 말들만 고르고 골라 적어볼게요. 이 글의 3문단 요약입니다 ㅋㅋㅋ

 

1. 욕심 이겠지만, 제 말에 아무도 상처받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사람을 살리고 희망을 주고 도움을 주는 좋은 말을 하고 싶습니다. 반대하는 말을 해도 어떠한 불순한 의도가 있지 않고 다같이 잘되기 위해서 라는 걸 모두가 느낄 수 있게, 일에서 만큼은 누구에게도 감정 섞인 말을 하지 않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2. 의견을 내거나 코드를 작성하고 나서 누구에게 질문이나 피드백을 받아도 당당하고 싶습니다. 물론 단시간에 의견을 내야 할 때는 어려울 수 있을 것 같아요, 그 부분에서는 주눅들지 않으려 합니다. 하지만 시간을 내어 말을 정리하거나 코드를 첫 작성부터 어느정도 완성도 있게 만드는 연습은 꼭 필요해보입니다.

 

3. 앞으로도 제가 하고싶은 일을 할 겁니다. 주변에서 누가 힘들다고 걱정해도 그냥 재밌어 보이면 할거에요. 지금까지 그런 일을 하면서 후회한 적이 한번도 없거든요 (하는 도중에는 잠시 후회합니다 ㅎㅎ). 힘든 만큼 성장할 거라고 믿으면서 또 힘듦을 즐기기 까지 하다니 놓치고 싶지 않은 장점이에요.

 

글을 마치며

나는 어떤 장단점을 가진 개발자일까? 지금 내가 그리고 있는 성장 그래프는 어느 정도 기울기를 가지고 있을까? 너무 궁금하지만 적어도 10년은 개발자로 살아봐야 이 질문들에 명확히 답할 수 있을 것 같아요 ㅋㅋㅋ 아직 반도 오지 않았네요. 아직 개발이 재밌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하면서 이만 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