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쁘게 달리다가 잠깐의 틈이 나 써보는 회고

 

오랜만에 쓰는 글이다. 힘들 때 글이 잘 써진다고 이번 글은 술술 써졌다.

회고 글을 오랫동안 작성하지 못해서 오랜만에 끄적여보았다.

 

정신없게 바빴던 2023년 여름

살면서 안 바빴던 여름이 없던 것 같긴 한데 잠깐의 일상을 챙길 여유 정도는 있었다. 나는 대체로 일을 벌려서 나를 바쁜 상황을 밀어붙이는 사람인데, 이렇게 해야 발전도 있고 당장은 괴롭지만 한층 단단해지는 걸 느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 여름에는 특히나 포기와 견딤 사이에서 아슬아슬한 줄달리기를 했다.

 

나를 죽이지 못한 시련은..

그런 말이 있지 않은가? ”나를 죽이지 못한 시련은 나를 강하게 만들 뿐이다“.

 

나는 포기하지 않는 능력이 꽤 높은 사람인 것 같다. 어릴 적 재수할 때 엄마가 나에게 ”희은이는 결국엔 해내서 별로 걱정이 안돼“라는 말을 해주었다. 그 당시에는 이 말이 부담도 되고 특별하지 않은 모두의 능력이라고 생각했는데, 그렇지는 않은 것 같다. 이번 프로젝트를 할 때도 내가 바쁜걸 보고 있던 동료 한 분이 “근데 렛시님은 결국엔 해내더라구” 라고 한 걸 전해들었는데 그게 나한테 꽤나 위안이 됐다.

 

물론 적정한 때에 포기할 줄 아는 것도 능력이다. 하지만 다행이도 아직 내가 견딜 수 없을 만큼의 시련이 찾아온 적이 없던 것 같다.

 

이 바쁜 와중에 PT를 처음 시작해서 다니고 있는데, 담당해주시는 트레이너 분이 “트레이너의 역할은 나의 한계보다 조금 더 높게 도전할 수 있도록 만들어주는 것”이라고 했다. 인생에도 이렇게 계획 하에 천천히 성장시켜주는 사람이 있으면 어땠을까 싶지만 그럴 수는 없다. 내가 내 트레이너가 되는 수밖에. 문제는 인생 초보자인 내가 객관적으로 내 능력의 한계치를 쳐다보기가 힘들다는 것이다. 내가 도저히 견딜 수 없을 것 같은 일은 포기해버리는 것이 맞다. 하지만 내 경험에 기반해 "나 이거 할 수 있을까..?" 라는 의문이 드는 것은 대부분 할 수 있었던 경우가 많았다.

 

무엇보다 힘들었던 건

바쁜 와중 무엇보다 힘들었던 건 함께 감정을 나눌 수 있는 사람이 없다는 것이다. 이번 프로젝트 바로 이전에 팀원분과 둘이서 몇 개월에 걸친 작업을 했었는데 잘 안 풀리는 기술적 문제 하나 가지고 몇 달을 골머리 싸맸던 기억이 있다. 그래도 서로의 존재만으로 힘이 되어서 괜찮았다. 하지만 이번은 기댈 수 있는 곳이 없었다.

 

내가 온전히 기대를 감당하고 증명해야 하는, 책임감이 부여되는 상황이 나를 가장 힘들게 만들었다. 그도 그럴게 나는 “안된다는 말을 잘 못하는 개발자”이다. 추가적인 기획이 들어와도 선행작업이 밀려도 ‘이거 안될 거 같은데요’ 라는 말을 하기가 싫고 나도 욕심이 나서 나를 갈아서 퀄리티를 채우려고 한다. 이런 내 성향에 가장 힘든 상황이 이번과 같이 “관리 해줄 수 있는 리더가 없고 내가 프로젝트의 마지막에 있는 경우”였다.

 

자잘하게는 처음 배운 프레임워크를 적용하여 개발하였기 때문에 익숙치 않아서 블로킹이 걸릴 만한 구석을 미리 예측하지 못한 탓도 있고, 앱 내에 포함되어 배포되기 때문에 배포과정을 모두 앱에 부탁드려야 한다는 것도 불편했고, 프로젝트에 처음인 사람이 너무 많았던 것도.. 나열하자면 끝이 없긴 하다.

 

그래서 뭘 배웠냐면..

배운 건 간단명료하게 정리해보겠다.

• Bus factor는 되도록 높아야 한다.
• 간트차트는 필요하다.
• 사소한 이슈라도 꼭 보고하자.
• 더블 체크는 필수다.
• 바쁘지 않은 상황에서도 스스로 바쁘게 준비할 수 있어야 한다.
  • 제로베이스의 프로덕트를 쌓아올리는 상황에서는 특히. 바쁘게 움직이고 물어봐야 한다.

 

그래도 이 프로젝트 꽤 좋았는데..

일단 새로운 사람들을 알게 된 것이 너무 좋았다. 중간에 같이 밥을 먹으러 나갔는데 이런 사람들과 사담을 안하고 일 얘기만 나눴던 게 아쉬울 만큼 기분이 좋은 대화를 나눴다.

 

몇 달간 내 리더가 된 분의 피드백도 좋았다. 궁금한 부분에 대해 두루뭉술한 답이 아닌 명확한 답을 주시고, 그게 불가하다면 해줄 수 있는 사람을 알려주셨다. 더해서 평소에 내 발전을 위해 뭘 하면 좋을 지 고민해주시는 게 느껴져서 감사했다.

 

그리고 지금껏 가장 큰 불만이 내가 다음에 무슨 일을 해야할 지 정해져있지 않다는 것이었는데, 갓 만들어진 프로젝트를 하니 그럴 일이 없다. 해야할 게 너무 많아서 리스팅해놓고 지금 할 일을 꺼내서 하는 구조라 아이러니하게도 안정감이 들었다.

 

그리고 힘들었지만 프로젝트의 최전선에 내가 있다는 생각을 하면서 더 책임감을 가지고 프로덕트에 몰입하게 되었다. 정말 오랜만에 열정을 가지고 일했다.

 

그래서 이런거 들어오면 또 할거야?

라고 묻는다면 아마 한 동안은 아닐 것 같다. 그래도 언젠가 또 심심해진다면 혹하겠지. 지루한 상태가 계속되는 걸 견디기 힘든 나같은 사람은 결국 어쩔 수 없다. 일 년에 한번씩은 도전적인 걸 해야 직성이 풀린다. 다음에 또 힘든 일을 마치고 나서 회고로 찾아와야지.